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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 발전산업

풍력산업, 안전 소홀하다 스스로 족쇄 채우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확실한 수단으로써 그 기능과 역할이 부각되면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풍력발전단지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안전문제를 등한시하다가는 이제 막 활성화 단계에 접어든 풍력산업에 업계 스스로가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풍력시스템 제작사마다 다른 안전점검 기준을 비롯해 유지보수 인력에 대한 안전교육 미흡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풍력단지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들의 경우 적절한 안전점검만 이뤄졌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설비상태를 제때 확인하지 못해 벌어진 인재라는 얘기다.

최근 정부는 2020년까지 30조원을 투자해 13GW에 달하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한다는 중장기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풍력산업의 성장을 이끌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풍력산업계에는 이 같은 성장을 뒷받침할 안전 관련 제도적 장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통합 매뉴얼, 정기안전검사, 안전교육 등 풍력산업의 건전한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 지원과 산업계의 자발적인 체질개선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먹구구 유지보수로 현장 안전상태 허술
정기안전검사·안전교육 등 법제화 필요 

풍력단지 증가로 현장사고 늘어나
올해 6월 기준 전력계통에 연결된 풍력발전설비는 총 481기 893.5MW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총 91기의 풍력시스템이 신규로 설치돼 224.25MW 규모의 설비용량이 늘어났다. 전년대비 5배 이상 성장한 역대 최대 실적이다.

지난해 성장세만 이어가도 올해 우리나라는 풍력 1GW 시대를 열게 된다. 전체 발전설비의 1%밖에 안 되는 수치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정도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풍력설비가 증가하면서 풍력단지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도 잇따라 늘어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태백풍력단지에 설치돼 있던 풍력시스템이 나무젓가락 부러지듯 두 동강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풍력시스템 제작사는 강한 바람으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타워 연결부위의 볼트와 너트가 느슨해지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절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제주 김녕풍력단지에서 운전 중이던 풍력시스템의 나셀부분에서 불이 나 1시간 30여 분만에 자연 진화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영을 맡고 있는 제주에너지공사는 브레이크 시스템의 불완전 작동에 따른 과열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전기설비기술기준에 자동소화설비가 설치된 풍력시스템 사용이 의무화됐다.

독일, 안전사고 대비 교육이수 필수
앞선 두 사고의 공통점은 풍력시스템 자체의 결함보다는 유지보수를 비롯한 안전점검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는 점이다. 현재 풍력시스템 보급에 치우쳐있는 정책에서 벗어나 유지보수 전문 엔지니어를 육성하고, 이들을 현장에서 채용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사고율을 줄이 수 있다고 전문들은 강조한다.

정기적인 정밀안전검사 규정을 도입하는 것도 사고 예방에 효과적이다. 유럽의 경우 대형풍력단지에 대한 정기안전검사를 2년마다 실시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이 같은 정기안전검사는 풍력시스템의 안전성 확보는 물론 풍력단지 운영 효율화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대비 효과가 큰 작업이다.

국내의 경우 전기사업법에 따라 4년에 한번만 풍력시스템 검사를 받으면 된다. 이마저도 전기 부분에 치우쳐 있어 풍력시스템 전체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는 유럽 사례와는 거리가 있다.

풍력시스템의 유지보수 작업은 수십 미터 이상 높이의 타워 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현장에 투입되는 작업자의 안전교육은 생명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해상풍력설비의 유지보수는 육상과 달리 안전사고에 노출될 빈도수가 높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안전사고 대비 교육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이 같은 교육을 수행할 전문교육기관이 없을 뿐 아니라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력안전교육은 풍력설비 유지보수 작업에 투입되는 엔지니어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풍력발전 선도국가인 독일의 경우 이와 관련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안전사고, 민원에도 영향 줘
풍력단지의 안전사고 문제는 가뜩이나 지역민원에 발목이 잡혀 더딘 속도를 내고 있는 국내 풍력발전 개발사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풍력발전 개발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민원의 대부분은 소음과 저주파 영향이다. 다만 이 같은 민원의 상당부분은 아직까지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불쾌감에 따른 것이라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안전사고 문제가 불거지면 상황이 180도로 바뀌게 된다. 지금도 풍력단지 개발에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많은데 인명피해와 직결될 수 있는 안전사고가 증가할 경우 민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풍력사업을 산림훼손과 대기업 이윤 추구 등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경단체와 민원인들에게 안전사고는 또 다른 사업 저지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공기청정기 작동소리에 불과한 소음에도 민원을 제기하는 현재 분위기라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당초 정부가 계획했던 풍력산업 성장전략은 대기업들의 잇따른 풍력사업 철수로 주춤한 상태다. 정부는 제2의 조선산업을 거론하며 제조업 키우기에 열을 올렸지만 정책의 연속성 부재라는 업계의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안전문제마저 챙기지 못하면 국내 풍력산업은 깊은 수렁에 빠질 여지가 있다. 더 늦기 전에 풍력산업 관련 안전관리종합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