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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갑과 을’ 상생과 공명이 필요한 시대

지난해 모 항공사 간부의 땅콩회항으로 인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망신을 사고 있고, 400여 명의 승객안전과 편의를 무시하는 갑질논란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화제다.

 

비단 지난해만 일어났던 갑질이었을까?

 

우리는 냉정하게 우리사회 갑과 을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지난 잘잘못을 한 우리사회 단면을 기억해봐야 한다. 잊힌 OO유업과 라면상무, OO기업 대표 야구방망이 사건은 갑질횡포의 전형으로 사회적 이슈가 됐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 산업 전반에 퍼져있는 갑질의 관행이라는 지적이다. 그때마다 우리사회의 특권층인 갑이 저지른 횡포에 대해 언론은 물론 전국민이 흥분하고 회고의 처벌을 요구하며 사건 당사자는 사회의 공공의 적이 됐다. 어쩌면 그동안 받아온 을의 설음이 한꺼번에 폭발한 공분일 것이다.

 

결국 갑의 횡포란 을의 피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에서의 비인간적 대우로부터 학교내 성추행 그리고 계약직들에게 벌어지는 정규직 권한을 막기 위한 편법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갑이 되면 을이었을 때를 까맣게 잊고 더한 갑질을 해대는 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행동방식이다. 자신이 받은 갑질에 창의성이 더해지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갑과 을은 법적으론 동등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결코 대등하지 않은 뿌리깊은 불평등이 우리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사회의 과도한 승자독식 문화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과 만나 ‘갑의횡포’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듯 하다.

 

사실 갑과 같은 을의 처지가 되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속절없는 을·병의 처지는 생존을 위해 견뎌내야 한다.

 

우리사회는 30년간 빛의 속도로 노력한 결과 GDP(국민총생산) 2만4,000달러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박탈, 우울, 열등에 시달리며 정신의 부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망하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와 모순, 다원화를 인정치 못하는 부조화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제 국민들은 뜬구름 같은 국가대개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눈 오면 눈 잘 치워주고 쓰레기 제때 치워주고 안전한 밤길이면 족하다.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공직자가 있다면 그들은 직위를 훔친 한낱 도적에 불과하다. 갑질은 인격과 영혼을 갉아먹는다. 상생과 공명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고픈 세밑이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갑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을의 하소연은 곪을 대로 곪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입으로는 요란하게 경제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최소한의 법제도적 형평성 보장마저 미뤄버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고통을 방치해선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법당국 등이 불공정 행위를 철저히 조사해 철퇴를 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입법기관은 갑의 권력 남용과 횡포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그나마 갑의 횡포가 줄어들 수 있는 희망이라면, 누군가가 진정한 갑이 돼 전체적인 행동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기대가 크다. 먼저 실력을 키우고 세상을 바꾸기를 소망한다. 불평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Electric Power Journal 2015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