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가동 중지로 인한 ▲전기요금 급등 및 전력부족 사태 ▲대형 전력회사에 대한 대중의 지지 하락 ▲정부의 강력한 개혁 추진으로 전력시장 전면 자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번 개혁의 특징은 일반 가정 등 소규모 수용가에 대해서도 소매시장이 자유화 되는 것이다.
2013년 4월 일본 정부는 전력 안정공급·전기요금 인상 억제·소비자의 전력회사 선택폭 및 사업자의 사업기회 확대 등을 목적으로 ‘전력시스템에 관한 개혁 방침’을 발표했다. 이어 3단계에 걸친 전력시스템 개혁 시행계획을 알렸다.
제 1단계인 ‘광역적 운영추진기관’은 지난 4월 설립됐다. 이 기관은 전국 규모의 전력 수급 및 계통계획을 수립하며 긴급 시 수급조정 지시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제 2단계인 전력소매시장 전면 자유화는 2016년 4월 시행될 예정이다.
제 3단계인 송·배전 부문의 법적 분리는 2020년 4월 시행될 예정으로, 이는 기존 전력회사의 송·배전 부문을 법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출처·에너지경제연구원 ‘일본 전력시장 개혁의 주요 난제와 향후 과제’>
자유화 이후 정전 발생 시 책임소재 규정 미비
전력 소매시장에 다양한 에너지 기업 진입
일본은 이번 전력소매시장 전면 자유화 계획 발표 이후 신전력사업자의 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스업계·정유업계·재생에너지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력 소매시장 진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전력사업자 수는 2013년 말 126개사에서 2015년 3월 654개사, 2015년 8월 기준 734개사로 급증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6년 4월부터 전면 자유화되는 전력 소매시장에서 모든 소비자에게 전기를 판매할 수 있는 소매전기사업자 리스트를 올해 10월부터 발표하고 있다.
올해 10월 말까지 등록된 45개사에는 ▲도시가스 ▲정유회사 ▲태양광 발전 등 다양한 에너지 기업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전력 소매시장에 다양한 에너지 기업이 진입함에 따라 도쿄전력 등 주요 전력회사의 영업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전력회사들은 기존 고객 유지 및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 가스·통신서비스 회사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현재 2,900만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유지하는 동시에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Softbank, KDDI 등 일본 대형 통신사와의 연계에 나섰다. 도쿄전력은 향후 전기와 통신을 통합 할인 판매해 고객들을 확보할 방침이다.
간사이전력도 2016년 봄에 전력·통신 통합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간사이전력은 먼저 간사이 지역 고객을 확보한 후 수도권 지역 고객 확보에 주력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존 독점적 지위 이용한 불공정 경쟁행위 예상
일본의 전력시장 개혁 추진과 관련해 기존 전력회사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관련 업계에서는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경쟁행위를 예상했다. 이에 따라 소매 전기사업자들의 성공적인 전력시장 진출여부가 불투명해졌다.
1990년대부터 전력시장을 자유화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시도는 3번 있었지만 매번 전력회사의 강력한 반대와 정치적 압박으로 전면적인 개혁은 모두 실패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전력시장 전면 자유화 추진 이면에는 정부의 강력한 추진의지와 전력회사의 반발, 그리고 상반된 두 입장 사이의 조율이 있었다.
특히 이번 개혁 추진과정에서 전력회사의 저항이 이전보다 약해진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력회사들이 대중의 지지를 잃은 것에 기인했다. 반면 정치인들은 전력시장의 전면적인 개혁에 대해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2013년 1월 경제산업성 장관과 전기사업연합회 야기 마코토 회장(간사이 전력 사장) 등 9개 전력회사 사장 간 회담에서 정부 측은 발전·송배전 분리가 불가피함을 주장했으며, 전력회사 측은 그 대신 원전 재가동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소매 모회사 방식, 기존 전력회사에게 유리
이번 전력시장 개혁의 성공요건은 기존 전력회사와 소매 전기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과 높은 수준의 전기요금이 낮아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목표 달성여부에는 송·배전 요금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해 올해 10월 경제산업성 전력거래감시위원회 전기요금심사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는 송·배전망을 운영하는 10개 전력회사가 신청한 송·배전요금 심사가 진행됐다.
송·배전 요금은 올해 연말 결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전력 소매기업들은 구체적인 요금을 발표할 예정이다. 송·배전 요금이 높게 설정되면 저렴한 전기요금을 제공하기가 어려워진다.
일례로 소매전기사업자가 주쿄지역 소매시장에 진출할 경우 일본 도매전력거래소(JEPX)에서 구입하는 1kWh당 약 10엔의 현물가격과 IT 비용을 포함한 약 5엔의 판매관리비, 주부전력의 송·배전요금 9.03엔을 더하면 공급비용이 24엔에 달한다.
주부전력의 기존 가정용 전기요금이 23~24엔 수준이기 때문에 소매전기사업자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송·배전 부문 법적 분리방식의 한계도 언급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발전·송배전 분리가 계획돼 있으며 분리방식은 지주회사 방식과 발전·소매 모회사 방식으로 나뉜다.
지주회사 방식은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발전회사와 소매회사를 두는 방식이다. 발전·소매 모회사 방식은 발전회사와 소매회사 하에 송배전 회사를 두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발전·소매 모회사 방식이 송·배전 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할 뿐 발전과 소매는 분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주회사 방식에 비해 기존 전력회사들에게 더 유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도쿄전력은 2016년 4월 지주회사제를 시행하기로 돼 있다.
도쿄전력을 제외한 8개 전력회사는 발전·소매 모회사 방식을 선택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도쿄전력은 지주회사제 전환에 따라 자기시장 잠식(cannibalization)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면 자유화 시행 후 도쿄전력 발전회사가 소매 전기사업자에 도매공급을 할수록 자사 소매회사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자사 소매회사가 외부에서 전원을 조달할수록 자사 발전회사 매전 수익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발전·소매 모회사 방식에 대해 관계자들은 사실상 수직통합체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며, 이 방식으로는 수요의 유동화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같은 전력회사 내에서 발전회사·소매회사 간 부당한 내부거래가 이뤄져 발전회사가 소매 전기사업자에 대한 도매공급을 거절하고, 자사의 소매회사에 싼 값으로 전력을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송·배전 부문이 자사 발전·소매회사를 우대해 소매 전기사업자의 송전 신청을 배제하는 차별적 대우도 우려된다.
소매 전기사업자의 경쟁 우위 확보 어려움
새롭게 전력 소매시장에 진출하는 소매 전기사업자는 기존 전력회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1999년 2차 개혁에 따라 대규모 수용가에 대한 소매시장(전체의 약 62%)이 자유화됐고 신전력사업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판매비중은 8%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92%는 여전히 대형 전력회사들이 차지했다.
2014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은 전력공급회사 변경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전기요금을 꼽고 있다.
노무라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전기요금이 현재보다 10% 인하될 경우 일반 가정의 16%가 신규 기업으로 전력회사를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소매 전기사업자 입장에서는 기존 전력회사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제공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번에 개방되는 소매시장은 약 8조엔 규모라고 하지만 이중에서 소매 전기사업자가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이번 전면 자유화를 앞두고 신전력사업자들이 급증했는데 실제 소매 전기사업자로 등록해 전력판매를 실시할 기업은 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전력사업자로 신고한 회사들의 경우 ▲송·배전요금 미확정 ▲가격경쟁력 우위 확보의 어려움 ▲공급력 확보 어려움 등으로 인해 소매 전기사업자 등록을 주저하는 사례도 있다.
더구나 현재 원전 가동중지로 인해 일본의 전력공급 사정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소매 전기사업자들의 공급력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력·가스거래 감시위원회 설립… 공정거래 선도
이번 전력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력회사와 소매 전기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올해 6월 경제산업성 산하에 전력·가스거래 감시위원회가 설립됐다.
전력·가스거래 감시위원회는 송·배전 부문 법적 분리가 완료된 이후에 송·배전 부문과 발전·소매 부문 간 정보차단, 대표이사 겸직 금지, 그룹 내 자금융통 금지 등의 규제를 하게 된다.
특히 송·배전 부문이 자사의 발전·소매 회사를 우대해 소매 전기사업자의 송·배전망 이용신청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전력회사의 발전·소매부문 간 내부 거래, 한계비용이 싼 화력전원이 있는데도 소매 전기사업자에게 팔릴 것을 우려해 발전하지 않는 행위 등도 모두 감시 대상이다.
이와 함께 전면 자유화 이후 정전 발생시 책임 소재에 대한 규정이 미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현재 광역기관이 모든 발전소에 대한 급전지령 권한을 갖고 정전 발생시 해당 지역의 전력회사에 복구 지시를 내린다. 정전 범위가 인근지역까지 포함될 시 해당 지역의 전력회사에도 급전 지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인근지역 전력회사는 광역기관으로부터 급전지령을 받더라도 자사 지역의 정전을 우려해 지시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상대측 과실사고’에 대한 보상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계·정부 중심으로 전력시장 개혁 강력 추진
에너지 안보를 중시하는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그 이후의 전력 부족현상을 겪으며 기존의 지역독점 수직통합전력회사 체제로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이후 지역독점을 개방해 다른 지역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했으며 타 산업에서도 전력산업에 진출할 수 있게 했다.
일본 전력시장 개혁에는 많은 난제가 있지만 정치계와 정부를 중심으로 강력한 추진을 통해 개혁이 완성돼 가고 있다. 또한 개혁으로 인해 전력산업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 신산업 창출 등 전력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요금제 다양화, 서비스 질 향상도 기대되는 가운데 스마트미터 보급에 따른 수요반응, 가스·전력 통합 요금서비스 등 신산업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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